[중앙 칼럼] 검사장 도전…꿈은 이루어진다
“우리 학창 시절의 꿈은 주유소 사장이 되는 거였죠.” 아주 먼 옛날 같지만 불과 30~40년 전이다. 어릴 때 부모를 따라 미국에 온 1.5세 한인 젊은이들의 꿈은 주유소나 리커스토어를 운영하는 것이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남가주 지역에서는 이민자에 대한 차별이 공공연했다. 학교에서도, 길에서도 차별을 당하며 지내는 이민자 가정의 자녀들은 언어 문제로, 경제적인 문제로 대학에 진학하는 것조차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그런 이민자 자녀들의 눈에는 롤렉스 시계를 차고 벤츠를 타고 교회에 오는 한인 사장님들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미래라고 여겼을 것이다. 그러니 정치인을 비롯해 변호사, 의사, 회계사, 교사 등 주류 사회에서 활동하는 전문직에 종사하겠다는 꿈은 상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아니 상상했어도 이룰 수 없는 꿈으로 여겼다고 했다. 올림픽경찰서후원회(OBA) 회장이자 상법 전문 브래드 이 변호사의 이야기다. 이 변호사는 “고등학교 시절 가장 좋은 파트타임은 주유소와 리커스토어에서 일하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주급을 받으면 친구들과 만나 햄버거를 사 먹는 게 가장 신났던 시간이었다고도 했다. 대학에 진학하는 한인 젊은이들이 많지도 않았지만 제때 졸업하는 학생들은 더 찾기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이 변호사는 “고등학교를 같이 다니던 친구들은 각각 커뮤니티 칼리지로, 4년제 대학으로 진학하면서 뿔뿔이 흩어졌고 매일 만나던 친구들과도 자연스럽게 연락이 뜸해졌다. 그렇게 각자 이민자의 삶을 살아 갔다”고 회고했다. 그런데 10여 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 우연히 만난 고등학교 친구가 검사가 돼 있었다. 이 변호사는 그를 보고 많이 놀랐다고 한다. 그 검사 친구 역시 변호사가 된 친구의 모습에 놀랐다고 했다. 서로가 젊은 시절 상상하지 못했던 직업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검사 친구가 바로 최근 LA시 검사장직에 도전한 리처드 김 검사다. 이 변호사는 “알고 보니 어릴 때 나는 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꿨다. 근데 김 검사는 검사와 검사장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 서로 꿈을 이뤄나가는 과정에서 다시 만나니 더 반가웠다”고 당시 만남을 들려줬다. 서로가 가진 꿈을 말하지 못했던 건, 아니 어쩌면 들었지만 잊어버린 건 당시만 해도 이룰 수 없는 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LA시 검사장에 도전하는 김 후보가 자랑스럽다는 이 변호사는 최근 김 검사를 위한 후원금 모금 행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시엔 아무도 이런 기회가 한인 이민자들에게 생길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도전을 할 기회를 갖게 된 지금이 꿈 같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한 친구가 자랑스럽습니다.” 지난 10여년 동안 많은 남가주 한인 1세들이 주류 정치에 도전해 좋은 결과를 기록했다. 지역 교육위원부터 시의원, 시장, 주 상원의원과 하원의원에 이어 2명의 연방 하원의원도 배출했다. 법조계에 진출한 한인들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변호사와 검사뿐만 아니라 많지는 않지만 지역 수피리어 법원과 주 항소법원, 연방 법원에 한인 판사들이 탄생하고 있다. 임명을 기다리기보다 선거를 통해 판사로 선출된 한인 법조인들도 나오고 있다. 이번에 김 검사가 한인으로는 처음 검사장직에 도전했다. 이 변호사의 말대로 김 검사를 통해 한인 커뮤니티가 한인 검사장을 배출하는 시대를 열기를 기대해 본다. 그를 통해 2~3세들이 더 큰 꿈을 꾸고 도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장연화 / 사회부 부국장중앙 칼럼 검사장 도전 la시 검사장 검사 친구 한인 이민자들